사고 난 차 EDR 기록, 제조사가 15일 안에 줘야 합니다: 기록 안 남는 사고와 ADAS 작동 여부

사고가 난 뒤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자동 긴급제동이 왜 안 걸렸느냐”로 다툼이 생기면 차 안의 사고기록장치(EDR)가 가장 객관적인 자료가 됩니다. 소유자나 사고 차를 몰던 운전자, 그 가족은 제조사에 기록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는 요구받은 날부터 15일 안에 직접 주거나 우편으로 보내야 합니다.

다만 모든 사고가 기록되지는 않습니다. 가벼운 사고 기록은 다음 사고에 덮어쓰일 수도 있습니다. 긴급제동·차로 유지 같은 첨단운전자보조장치(ADAS)가 켜져 있었는지는 차의 형식에 따라 아예 기록되지 않기도 합니다. 요구하기 전에 이 세 가지부터 나눠 보세요.

마침 ADAS 사고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분석한 ADAS 관련 사고 36건 가운데 23건은 ‘특이사항 없음’으로 끝났고, 리콜·무상수리로 이어진 11건은 모두 비상자동제동장치(AEB) 관련이었다고 세계일보가 9월 27일 보도했습니다. 경찰과 한국도로공사가 의뢰한 6건은 모두 운전자가 기능을 과신한 사고였습니다.

기록이 남는 사고, 남지 않는 사고

사고기록장치는 늘 녹화하는 블랙박스가 아닙니다. 정해진 충격이 있을 때만 그 앞뒤를 저장합니다. 자동차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56조의2가 정한 ‘사고’는 셋입니다.

  1. 0.15초 안에 진행 방향 속도가 시속 8km 이상 바뀐 경우(측면 속도 변화를 기록하는 차는 옆 방향도 포함)
  2. 에어백이나 안전띠 프리텐셔너(프리로딩 장치)처럼 한 번 터지면 되돌릴 수 없는 안전장치가 전개된 경우
  3. 보행자·자전거 운전자와 부딪힐 때 상해를 줄이려고 차 밖에 설치한 보호장치가 전개된 경우

주차장에서 천천히 긁은 정도의 접촉은 이 기준에 못 미쳐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고는 블랙박스 영상이 사실상 유일한 기록입니다. 영상을 지키는 요령은 보복운전 신고 때 블랙박스 영상 챙기는 법에 정리했습니다.

장착 의무가 있는 차는 승용차(초소형 제외)와 차량총중량 3.85톤 이하 승합·화물차입니다. 2015년 12월 19일 이후 새로 개발된 형식부터 적용됐기 때문에, 그보다 오래된 형식의 차는 장착 여부를 제조사에 확인해야 합니다. 장착된 차를 팔 때는 제조사가 ‘이 자동차에는 사고기록장치가 장착되어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을 줘야 하므로 차량 설명서에서 이 문구를 찾아보면 빠릅니다.

기록되는 내용: 충돌 전 5초

기록의 중심은 충돌 직전 5초입니다. 이 구간의 운행 정보를 0.5초 간격, 모두 11개 시점으로 남깁니다.

차량 운전석 아래 진단 단자에 케이블을 연결해 에어백 제어 모듈의 사고기록을 노트북으로 내려받는 모습
진단 단자에 추출 장비를 연결해 에어백 제어 모듈에 저장된 사고기록을 내려받는 모습. 미국 GM 차량 사례입니다. 사진: Wade Bartlett, 퍼블릭 도메인(위키미디어 공용)
언제무엇
충돌 5초 전부터 0초까지, 초당 2번차량 속도, 가속페달 밟은 정도, 제동페달 작동 여부, 엔진·모터 회전수, 핸들 각도, ABS·ESC 작동 여부
충돌 1초 전 시점운전석·조수석 안전띠 착용 여부, 에어백 경고등 점등 여부
충돌 순간속도 변화량, 에어백이 터지기까지 걸린 시간, 연속 사고 사이 간격

급발진을 주장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이 표의 첫 줄입니다. 5초 동안 가속페달과 제동페달이 각각 어떻게 기록됐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기록이 운전자 주장과 반대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구하기 전에 블랙박스 영상과 함께 맞춰 볼 준비를 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ADAS가 켜져 있었는지는 차마다 다릅니다

2024년 11월 개정으로 기록 항목이 늘었습니다. 비상자동제동장치(AEB), 정속주행·앞차 간격 유지(CC·ACC), 차로이탈경고, 수정조향·비상조향·자동명령조향 기능의 작동 상태도 충돌 전 5초 동안 기록해야 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입법예고 때 이를 기록 항목 45개에서 67개로 늘리는 개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적용 시점입니다. 새 기준은 2025년 5월 30일부터 시행됐지만, 그때 이미 만들고 있던 형식의 차는 2026년 12월 31일까지 옛 기준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산 새 차라도 몇 년 전부터 팔던 모델이면 ADAS 작동 여부가 기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르는 기준은 구매일이 아니라 형식입니다.

제조사가 주는 분석 결과보고서 양식에는 ADAS 작동 정보 칸이 따로 있습니다. 차에 해당 장치가 없거나 기록 시점에 작동하지 않았으면 그 칸은 ‘-’로 표시됩니다. 표시가 ‘-’라고 해서 곧 결함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운전자 보조 기능을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는 테슬라 FSD가 국내에서 어디까지 되는지 정리한 글에서도 다뤘습니다.

누가, 어떻게 요구하나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제30조의3이 정한 요구 자격은 여섯입니다.

  • 자동차 소유자, 그리고 소유자의 배우자·부모·자녀 등 직계가족
  • 사고 당시 운전자, 그리고 운전자의 배우자·직계가족
  • 국토교통부 장관, 성능시험대행자(한국교통안전공단)

회사 차나 렌터카를 몰다 사고를 냈어도 운전자 본인이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상대 차의 기록은 이 조항으로 요구할 수 없습니다. 상대 차 기록이 필요하면 수사기관이나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요구는 차를 만든 회사나 수입사에 합니다. 받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자동차관리법 제29조의3).

  1. 기록된 내용 그 자체. 장치에서 뽑아낸 원자료입니다.
  2. 분석 결과보고서. 제조사가 법에 따라 그 기록을 분석한 적이 있을 때 받을 수 있습니다.

요구받은 날부터 15일 안에 직접 주거나 우편으로 보내야 하고, 주지 않거나 거짓으로 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대상입니다. 자격을 증명하는 서류와 접수 창구는 제조사마다 다르니 고객센터에 먼저 물어보세요. 소유자인지, 사고 운전자인지, 가족인지에 따라 챙길 서류가 달라집니다.

제조사 분석이 미덥지 않으면 따로 분석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2024년 12월 법 개정으로 제조사는 차를 판 날부터 90일 안에 기록 추출 장비가 시중에 유통되게 해야 합니다. 받은 원자료를 손해사정사나 사고 분석 기관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넓어진 셈입니다.

수리·폐차 전에 요구해야 하는 이유

사고기록장치는 사고 3건 이상을 저장하게 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다음 사고의 기록에 덮어쓰이지 않도록 잠기는 것은 셋뿐입니다.

  • 에어백·안전띠 프리텐셔너 같은 비가역 안전장치가 전개된 사고
  • 보행자 보호장치가 전개된 사고
  • 비가역 안전장치가 없는 차에서 0.15초 안에 속도가 시속 25km를 넘게 바뀐 사고

에어백이 터지지 않은 가벼운 충돌 기록은 이후 다른 충격이 기록되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록이 필요할 것 같으면 차를 계속 몰거나 수리·폐차를 맡기기 전에 요구하세요. 모듈을 교체하는 수리라면 특히 먼저 챙겨야 합니다.

ADAS 결함이 의심될 때

기록을 받아 보니 긴급제동이 켜져 있었는데도 작동하지 않았다면, 국토교통부 자동차리콜센터 결함신고에 접수할 수 있습니다. 전용 전화는 080-357-2500입니다. 보험 처리와는 별개 절차라 따로 접수해야 합니다.

사고로 다쳐 치료가 길어질 것 같다면 보험 쪽 기한도 따로 챙겨야 합니다. 경상 환자는 8주를 넘겨 치료받으려면 서류 제출 시한이 있습니다. 자세한 날짜는 교통사고 8주 넘게 치료받을 때 7주 안에 낼 서류에 정리했습니다.

정리하면 순서는 이렇습니다. 블랙박스 영상을 먼저 따로 저장하고, 차를 고치기 전에 제조사에 사고기록을 요구합니다. 15일 안에 오지 않으면 다시 요구하고, 결함이 의심되면 리콜센터에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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